부처놈이 말한 고해의 바다란, 잘못된 것이다. 고해의 바다는 역으로 즐거움과 쾌락과 만족과 희망을 생성한다. 부처가 말하는 열반의 세계는, 파충류라고 불리는 반주들의 세계와 근접한다 여기서 조금만 더 나가면 곧바로 파충류반주들의 세계가 나온다. 파충류반주들은, 고해의 바다를 극력 기피하고 싫어한다. 그래서 반주로서의 술수를 개발하여 온갖 고통과 고뇌와 괴로움을 회피한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즐거움을 얻을수 없으므로, 대신 인간이라고 불리는 비교적 멍청한 얼간이들을 대타로 해서 괴로움을 시키고 그 괴로움으로서 상반하여 즐거움을 얻는다. 만일 인간,인류라고 불리는 얼간이 멍청이들이 없다면 요 파충류반주들 역시 즐거움과 만족을 얻을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이원성의 원리이다. 즐거움과 쾌락만족이란, 반드시 고통과 고뇌, 괴로움과 시련이 동반되어야 하는 것이 이원성의 법칙인 것이다 WHEN THE SMOKING IS GOING DOWN이라는 스콜피언스의 노래는 많은 진실들을 말해주고 있다. 쾌락과 만족은 반드시 고뇌와 고통이 동반되어야만 찾아오는 이원성의 법칙인 것이다. 이것은 그들 자신을 어른이라고 말하고 있는 공룡들과 파충류들에게 무언가 잘못 이해하고 헛소리를 주절대는 것이 아니냐는 반문을 제기한다 어른이라고 주장하고 어른처럼 보이는 사람들 세계가 나는 궁금했다. 그래서 알기를 바랬지만, 반주놈들이 막고 알지 못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반간접으로서 이건희놈을 통해서 바라다본 반주들로서의 어른들의 세계는 잘못 이해된 어른의 개념들을 도식화하고 있다. 말데크악룡은 아주 어린 놈이며, 유치하고 아는 것이 없는 놈에 불과하다. 어른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 나는 어린애처럼 살았지만, 나의 세계에 고뇌와 고통은 없었다. 휴만종족들을 말할때 이들 공룡들과 파충류들은 자기들이 어른이며, 오랜세월을 살았다고 말한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것은 맞다. 하지만, 항상 그대로의 그대들 자신으로서만 살아온 헛된 세월인 것이다. 반주들의 1주기는 3600조년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장구한 세월동안 이 반주들이 변화하는가 하면 아무런 변화도 없는 것인데, 그렇게 해야만 되풀이반복되는 주기동안 쾌락과 만족(그들이 보건대)을 얻고 EASY GOING할수 있기에 그렇다. 게다가 그렇게 해야만 그들이 존재할수 있었다. 만일 변화하면 그들은 종결된다. 1角은, 無限의 永遠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1각이 전체를 말하지 않는다. 그대들은 1각을 보고 있다. 그것도 영원의 세월동안 1각을 보는 것이다. 1각은 2각이 된다. 2각은 3각이 되고 3각은 12각이 된다. 12각은 24각이 되며, 무한히 펼쳐져간다. 대우주의 영원한 주기속에서 제한이란 없는 것이다. 관찰자는 영원토록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관찰자는 죽은 것이다. 그렇게 관찰한 것은 1각이다. 관찰자가 1각에 머물면 결과 역시도 1각이다. 그것이 파충류,공룡들이다. 제3우주가 어려운 이유는 바로 무한의 각도들이 거기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영적인 우주라고 부른다. 물론 만든영체와 거짓된 복사판 영체들로서 뭔가를 하기는 하겠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무한의 영적우주를 제대로 알수 없다. 무한의 각도들은, 의식의 한계속에서 영원한 지평선속에서 알수 없는 불가지의 또 다른 지평선을 열어간다. 제3의 우주는, 물론 공룡, 파충류의식으로 보면 다를 것이지만 나의 의식으로 보건대, 영원한 우주이다. 의식의 스피드는 우주를 종단하지만, 제3우주에 도달하면 의식의 스피드는 무력화된다. 영원이 영적우주 앞에서 나의 의식은 우주의 끝을 알수 없는 것이다. 제2우주까지는 우주의 끝을 본다. 하지만 제3우주는 그렇게 할수 없다 물론 파충류,공룡들은 그것을 파충류, 공룡방식으로 보겠지만, 그것은 파충류,공룡방식일 뿐이다. 가야할 길은 영원하다. 파충류, 공룡으로서 아무리 영겁의 세월을 살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오로지 파충류,공룡이라고 불리는 특정사상속에서 인 것이다. 갈길은 영원한데 이들은 모든 것을 다 안다고 말한다. 제3우주를 바라다본 나의 의식은 지구인의식이지만, 이 의식이 어디에 속할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태양계 제3행성 지구를 출발하여, 말데크혹성을 넘어서서 목성계로 향해 갈적에 아틀란티스의식체는 순간적인 한계속에서 허둥되었지만, 나의 의식은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만큼 목성계로 간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인 것이다. 말데크까지가 아틀란티스의식체의 정상지점이며, 이후부터 고난의 코스가 되는 것이다. 플레이아데스반주들은 나의 서술을 조롱하듯 쳐다보고, 자기들은 비임쉽을 타고 초광속으로서 여행한다고 말하려 하지만, 이들은 기본조차 모르는 자들일 뿐이다. 아르하트라는 개념은, 가장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가장 높은 곳까지 실제적 경험과 체험으로서 몸빵으로서 그 스스로 겪고 넘어가고 이해하고 알고 그러한 과정속에서 낱낱이 그 모든 것을 잘 알고 이해하고 진실된 앎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개념이다. 무슨 명상수도를 해서 알고 그런 것이 아르하트가 아니다. 아르하트라는 것은 사람으로서 대사가 된 것을 말하지, 무슨 신이나 아수라로서 대사급이 된 것을 말하지 않는다. 짐승수준도 안될 놈 주제에 반주놈들이 영원의 과거로부터 남으로부터 강도질하고 훔친 것들을 대가리동작으로 알고 그것을 전부 안다고 말하는 놈들이 너희놈들이다.
부처놈이 말한 고해의 바다란, 잘못된 것이다. 고해의 바다는 역으로 즐거움과 쾌락과 만족과 희망을 생성한다.
부처가 말하는 열반의 세계는, 파충류라고 불리는 반주들의 세계와 근접한다
여기서 조금만 더 나가면 곧바로 파충류반주들의 세계가 나온다. 파충류반주들은, 고해의 바다를 극력 기피하고 싫어한다. 그래서 반주로서의 술수를 개발하여 온갖 고통과 고뇌와 괴로움을 회피한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즐거움을 얻을수 없으므로, 대신 인간이라고 불리는 비교적 멍청한 얼간이들을 대타로 해서 괴로움을 시키고 그 괴로움으로서 상반하여 즐거움을 얻는다. 만일 인간,인류라고 불리는 얼간이 멍청이들이 없다면 요 파충류반주들 역시 즐거움과 만족을 얻을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이원성의 원리이다. 즐거움과 쾌락만족이란, 반드시 고통과 고뇌, 괴로움과 시련이 동반되어야 하는 것이 이원성의 법칙인 것이다 WHEN THE SMOKING IS GOING DOWN이라는 스콜피언스의 노래는 많은 진실들을 말해주고 있다. 쾌락과 만족은 반드시 고뇌와 고통이 동반되어야만 찾아오는 이원성의 법칙인 것이다. 이것은 그들 자신을 어른이라고 말하고 있는 공룡들과 파충류들에게 무언가 잘못 이해하고 헛소리를 주절대는 것이 아니냐는 반문을 제기한다
어른이라고 주장하고 어른처럼 보이는 사람들 세계가 나는 궁금했다. 그래서 알기를 바랬지만, 반주놈들이 막고 알지 못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반간접으로서 이건희놈을 통해서 바라다본 반주들로서의 어른들의 세계는 잘못 이해된 어른의 개념들을 도식화하고 있다.
말데크악룡은 아주 어린 놈이며, 유치하고 아는 것이 없는 놈에 불과하다.
어른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 나는 어린애처럼 살았지만, 나의 세계에 고뇌와 고통은 없었다. 휴만종족들을 말할때 이들 공룡들과 파충류들은 자기들이 어른이며, 오랜세월을 살았다고 말한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것은 맞다. 하지만, 항상 그대로의 그대들 자신으로서만 살아온 헛된 세월인 것이다.
반주들의 1주기는 3600조년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장구한 세월동안 이 반주들이 변화하는가 하면 아무런 변화도 없는 것인데, 그렇게 해야만 되풀이반복되는 주기동안 쾌락과 만족(그들이 보건대)을 얻고 EASY GOING할수 있기에 그렇다. 게다가 그렇게 해야만 그들이 존재할수 있었다. 만일 변화하면 그들은 종결된다.
1角은, 無限의 永遠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1각이 전체를 말하지 않는다. 그대들은 1각을 보고 있다. 그것도 영원의 세월동안 1각을 보는 것이다. 1각은 2각이 된다. 2각은 3각이 되고 3각은 12각이 된다. 12각은 24각이 되며, 무한히 펼쳐져간다. 대우주의 영원한 주기속에서 제한이란 없는 것이다. 관찰자는 영원토록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관찰자는 죽은 것이다. 그렇게 관찰한 것은 1각이다. 관찰자가 1각에 머물면 결과 역시도 1각이다. 그것이 파충류,공룡들이다.
제3우주가 어려운 이유는 바로 무한의 각도들이 거기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영적인 우주라고 부른다. 물론 만든영체와 거짓된 복사판 영체들로서 뭔가를 하기는 하겠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무한의 영적우주를 제대로 알수 없다. 무한의 각도들은, 의식의 한계속에서 영원한 지평선속에서 알수 없는 불가지의 또 다른 지평선을 열어간다. 제3의 우주는, 물론 공룡, 파충류의식으로 보면 다를 것이지만 나의 의식으로 보건대, 영원한 우주이다. 의식의 스피드는 우주를 종단하지만, 제3우주에 도달하면 의식의 스피드는 무력화된다. 영원이 영적우주 앞에서 나의 의식은 우주의 끝을 알수 없는 것이다. 제2우주까지는 우주의 끝을 본다. 하지만 제3우주는 그렇게 할수 없다
물론 파충류,공룡들은 그것을 파충류, 공룡방식으로 보겠지만, 그것은 파충류,공룡방식일 뿐이다. 가야할 길은 영원하다. 파충류, 공룡으로서 아무리 영겁의 세월을 살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오로지 파충류,공룡이라고 불리는 특정사상속에서 인 것이다. 갈길은 영원한데 이들은 모든 것을 다 안다고 말한다.
제3우주를 바라다본 나의 의식은 지구인의식이지만, 이 의식이 어디에 속할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태양계 제3행성 지구를 출발하여, 말데크혹성을 넘어서서 목성계로 향해 갈적에 아틀란티스의식체는 순간적인 한계속에서 허둥되었지만, 나의 의식은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만큼 목성계로 간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인 것이다. 말데크까지가 아틀란티스의식체의 정상지점이며, 이후부터 고난의 코스가 되는 것이다. 플레이아데스반주들은 나의 서술을 조롱하듯 쳐다보고, 자기들은 비임쉽을 타고 초광속으로서 여행한다고 말하려 하지만, 이들은 기본조차 모르는 자들일 뿐이다.
아르하트라는 개념은, 가장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가장 높은 곳까지 실제적 경험과 체험으로서 몸빵으로서 그 스스로 겪고 넘어가고 이해하고 알고 그러한 과정속에서 낱낱이 그 모든 것을 잘 알고 이해하고 진실된 앎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개념이다. 무슨 명상수도를 해서 알고 그런 것이 아르하트가 아니다. 아르하트라는 것은 사람으로서 대사가 된 것을 말하지, 무슨 신이나 아수라로서 대사급이 된 것을 말하지 않는다. 짐승수준도 안될 놈 주제에 반주놈들이 영원의 과거로부터 남으로부터 강도질하고 훔친 것들을 대가리동작으로 알고 그것을 전부 안다고 말하는 놈들이 너희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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